산부인과 폐업, 예식장은 요양원으로…광주·창원마저 소멸 그림자

입력 2024-04-01 18:31   수정 2024-04-09 15:53


“점심에 밥 무러 오는 사람이 하루 20명도 안 돼예, 일하는 아주메도 내보냈스예.”

1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한 산업단지에 자리한 돼지국밥집.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30대인 기자가 들어가자 “오랜만에 젊은 양반이 왔다”며 반겼다. 그는 “손님 대부분이 50~60대”라며 “야구팀이 있는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젊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둘러본 산단 일대는 한산했다. 이따금씩 적막을 깨는 그라인더(표면을 매끄럽게 갈아내는 작업) 소리만 들렸다. 한 주조업체 대표는 “월급 500만원을 준다고 해도 사람이 안 온다”며 “직업계 고등학교도 학생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 인구 감소가 산업 경쟁력에 영향
통계청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창원 인구는 지난 2월 말 기준 100만6593명이다. 창원, 마산, 진해를 합쳐 통합 창원시를 만든 2010년 109만181명에서 14년 만에 8만3588명이 줄었다. 이런 감소세는 2014년 행정구역 조정이 있었던 청주 흥덕구를 제외하면 지역도시 중 가장 가파르다. 내년께 인구가 100만 명 아래로 내려가면 특례시 지위도 박탈당할 수 있다.

창원의 인구 감소는 지역 경제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지역 뿌리산업이 무너지고 있어서다. 한 금형업체 대표는 “경남엔 국가 안보에 필수인 항공, 방위산업, 우주 분야의 주조, 도금, 표면처리 뿌리기업이 많다”며 “국가 안보와 경제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지금껏 버텨왔지만 지금은 기술을 이어받을 인력을 찾을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인프라 붕괴→교육 악화 악순환
인구 감소는 산업뿐 아니라 출산, 양육, 교육 인프라 등에 영향을 미쳐 수도권 쏠림 현상을 강화하는 ‘악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교육 인프라가 빠른 속도로 붕괴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 입학생 중 부산 출신은 138명으로 2013년 173명에 비해 20.2% 감소했다. 작년 부산 인구를 기준으로 보면 약 2만4000명당 한 명의 서울대생을 배출한 것인데, 이는 17개 지방자치단체 중 9위에 그치는 성적이다.

부산 지역에선 어린이들의 학력 수준이 수도권에 비해 떨어지는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부산의 에듀테크 스타트업 필굿이 지난해 7~8월 전국 5~12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한 지능검사 결과에 따르면 부산 지역에서 주의력이 낮은 학생 비중은 13.7%로 서울 지역(7.7%)의 두 배에 달했다. 필굿은 ‘서울과 부산의 교육 인프라 차이’가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초등학교가 노인대학으로
저출산 문제는 출산과 보육 관련 인프라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달 찾아간 광주의 대표 산부인과였던 문화여성병원엔 ‘건물 전체 임대’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산부인과 전문의 다섯 명이 일하던 이 병원은 지난해 9월 폐업을 선언한 뒤 반년 동안 주인을 찾지 못했다. 이 병원이 폐업해 광주 내에서 분만할 수 있는 산부인과는 여섯 곳만 남았다. 한 산부인과 병원장은 “아직 분만장을 운영하는 병원들도 의사가 대부분 50대 중후반”이라며 “이들이 은퇴하는 10년 뒤에는 광주에서도 분만실을 찾아 병원 ‘뺑뺑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걱정했다.

기초지자체의 인프라는 더 열악하다. 농어촌 지역은 노인 중심 사회로 서서히 탈바꿈하고 있다. 충남 부여의 세도초는 폐교 후 세도노인대학으로 운영되고 있다. 충남 공주의 그랜드예식장은 작년부터 그랜드요양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경기 남양주에선 아이들이 뛰놀던 놀이터 자리에 노인 체육시설이 들어섰다.

창원=강경주/부산=민건태/광주=임동률/공주=강진규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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